"듣다", 그리고 "묻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군대를 전역하면서 내가 내린 가장 큰 결론 중 하나.
인간에 대해서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든,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어떤 부분에 대해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는 아니다. 좋은 것이 옳은 것이고 싫은 것이 그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이 이 둘을 분간하지 못한다. 자신이 싫으면 그것은 그른 것이 된다. 좋다, 싫다로 그쳐야 한다. 그것은 생각 외로 그른 것이 아닐 수 있다.

"남을 함부로 바꾸려 하지 말 것"

사람은 판단하면 바꾸려 한다.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바꾸려 한다. 그러나 생각 외로 자신에 의한 변화가 아닌 타인의 강압에 의한 변화는 오히려 문제를 가중시킬 때도 있다. 일단 그 자체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아니, 설령 완벽한 이해를 담보로 하더라도 그 변화의 요구는 강압이 된다.

인간은 주체적 생물이며 따라서 주체적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그것은 남이 요구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그 의지를 받쳐주는 것이지,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압해서는 안 된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상대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상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전에 상대가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의 전제는 기본적으로 이것이다.

"잘 들을 것"

판단하며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들을 것.

상대를 그저 내버려두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고치려 하는 것 또한 이해하는 행동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얘기를 듣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거기에 자신의 잘난 지식을 뽐내려 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드높은 논리와 이성을 들이대는 것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어차피 완벽한 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한다지만 생각 외로 그 속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감성과 감정과 본능이다. 진정한 이해는 이성적 이해가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한 이해를 수반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란 말은 사실 객나적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객관적을 표방한 주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함부로 그런 부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잘 듣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잘 물을 것"

좋은 질문에서 좋은 답이 나온다. 우문현답은 기이한 현상일 뿐,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상대에 대해 뭔가를 말해주고 싶다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대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쳐지지도 않는다. 깨달아도 고치지 못하는 마당에 남이 알려준다고 고친다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산모가 아파한다고 아이를 대신 낳아줄 수는 없다. 낳는 과정에서 단지 도움만 줄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중요한 것 하나.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 것"

그래서 세상은 힘들다.






Por El monte Profugo

Rasiel, the pathfinder of wisdom.


p.s. 누군가 지난번부터 내 글 하나하나 다 읽고 있는 게 통계상에서 보이는데....
대체 누구셩? ㅋㅋㅋ

by 라시엘 | 2009/09/11 23:41 | The P. Feel | 트랙백 | 덧글(0)
여력이 남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지쳤어. 모든 것에 지쳐버린 느낌이야. 

동아리를 포함한 학교 일도, 학업도, 사랑도..... 심지어 숨쉬는 것조차도.

대답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지쳤어.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어느 곳에서든 어떤 대답조차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지쳤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혼자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에 지쳐버리고 있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이거라도 확실하니 이거에라도 기댈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날 질식시키고 있어.


일과 사랑과 여가 생활을 잘 조율하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하는데, 난 그 세가지 모두 충실하려고 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학업은 과연 내가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 사랑은 대답은 들리지 않고 혼돈만 더해가. 여가생활이라 할 수 있는 동아리는 더 이상 여가가 아닌 일처럼 나를 짓눌러. 결국 난 현실을 도피하고 영상물 속에 빠져들지만, 그조차도 허무하기 그지없을 뿐이야.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그 중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걸까?

답답해. 답답한 마음에 오히려 더 움직일 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수많은 충고를 하지만, 정작 내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서 있는 주제에,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하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외톨이처럼 혼자서 발악하고 혼자서 힘들어할 뿐인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차라리 숨쉬는 걸 멈춰버린다면, 그건 오히려 더 편안하지 않을까.



내게 메아리를 들려줘.
난 숨쉬는 소리를 듣고 싶어.

내 숨소리가 아닌,
나와 같이 할 다른 이들의 숨소리를.


난 죽고 싶은 게 아냐.
난 살고 싶은 거야.
혼자가 아닌 모습으로.





Sono tua Disposizione.

Rasiel, the pathfinder of wisdom.
by 라시엘 | 2009/09/07 03:11 | Sp. in Life | 트랙백 | 덧글(1)
통증
착각이었어. 맘이 조금은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어. 그저 행동 하나에 기뻐하고 행동 하나에 가슴 속까지 통증이 느껴지는 현실은 여전히 달라지는 것 하나 없는 그대로였어. 차라리 끊는 것이 낫다 생각하고 끊기로 한 담배를 다시 물어버렸을 때도, 그냥 가만 있을 때 계속 보이는 모습을 지워버리려 할 필요가 없어졌다 느꼈을 때도 이젠 조금은 정리되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난 무얼 해야 하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과 내 어리석음에 통증만 깊어지는데.

바보. 바보. 바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달라졌다고 착각한 나.

바보. 바보. 바보.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지는 것 하나 못하는 나.

바보. 바보. 바보. 달라져야 한다는 말에 통증부터 느끼는 나.





Por el Monte Profugo.

Rasiel.
by 라시엘 | 2009/09/02 02:15 | To you...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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