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과 이문열, 그들의 삼국지
고우영과 이문열, 이문열과 고우영. 이 둘은 만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걸어오는 이들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삼국지이다. 둘 모두 '삼국지'라는 나관중의 작품을, 자기들 생각대로 평역한 그들의 '삼국지'를 대표작으로 하고 있다(여기서 이문열에 대해 반발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저쨌거나 그의 최고 베스트셀러는 삼국지다). 그러나 그 중 고우영은 삼국지 매니아 층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이문열 쪽은 삼국지 매니아 쪽에서는 배격당하는 느낌이 강하다. 분명 그 둘 모두 평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기존 삼국지의 관점에서는 혁명적일진대,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나름대로 삼국지 매니아라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이 차이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1978년 고우영 삼국지가 일간스포츠에 연재되었을 때, 그 당시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 작품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삼국지가 가지고 있던 틀을 과감히 파괴해버린, 동시에 삼국지란 틀에서 현 세태를 비판하는 요소들. 삼국지라는 이름은 있으나 더 이상 삼국지라고 부를 수 없는 작품. 그것이 고우영 삼국지였다.

특히 인물의 재해석, 그 중에서도 제갈량과 관우의 대립구도라는 발상은 참신의 극치를 달리는 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극치를 달리는 것은 오, 촉 간 형주공방전 당시 관우를 방치, 권력 상의 라이벌이었던 관우를 제갈량이 제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의 제기였다.

조조와 유비의 성향에 대한 새로운 분석 또한 참신했다. 유비 = 선, 조조 = 악 의 구도는 그의 책에서 완전히 깨져나갔고, 한국 최초로 유비의 후흑론이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쪼다 유비, 사나이 조조. 이 소갯말이 담고 있는 뜻은, 삼국지에 어느 정도 도가 트인 사람에게는 소름끼치는 대사와 같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수많은 패러디, 엽기 성향의 완벽한 소화 등, 그의 삼국지는 혁명과도 같은 삼국지였다. 이것은 그 당시 뿐 아니라 그것이 연재될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나조차도, '혁명이었다'며 감탄할 여지를 주고 있다.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은 적어도 3위권 내에는 족히 들지 않을까. 1988년에 1판이 나오고 지금까지 14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출판업계 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물론 성경이나 정석에는 확실히 못 미칠 테고, 개념원리 정도와는 비슷하지 않을까)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 수석 합격생이 10번 이상 읽었다 어쨌다 하면서 언론이 무진장 띄워준 것, 그리고 이문열이란 인물의 명성의 까닭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뭐 어쨌건.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이문열 씨의 문체, 그리고 인물들의 재해석과 그들간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측면이다. 사실 한국에서 책만 팔아서 먹고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작가 1순위로 꼽히는 이문열 씨니, 그 문체는 더 논할 필요가 없으리라. 솔직히 이문열 삼국지 싫어하는 나지만, 그의 문체는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다. 남성적이면서도 화려한 필체. 삼국지라면 이런 문체가 어울릴 것이다, 하는 그런 문체를 그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인물들의 재해석이라는 측면 또한 혁신적이었다. 관우와 제갈량의 대립구도, 유비와 조조의 재해석, 특히 정사까지 동원해가며 그러한 논리를 펴는 데 이문열 씨는 매우 열심이었고, '삼국지연의'가 아닌 '이문열의 삼국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그 대립구도를 이문열답게 실감나게 그려냈으니, 찬사를 받을 자격은 분명 있기는 있다.




그런데, 결국 둘은 똑같은 건데, 왜 둘의 평가는 극단을 달릴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이유를 짚어볼까 한다.



1. 시간의 차이

고우영은 1978년이고 이문열은 1988년이다. 그리고 이문열의 발상은 고우영의 발상을 동체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문열이 가장 주목받는 발상의 측면에서, 그것은 이미 고우영이 밟은 길을 밟을 뿐인 것이다. 더더구나 그 외의 발상 대부분이, 삼국지와 관련된 다른 서적들이 밟아놓은 길을 따라갈 뿐이다. 이래서야 이문열의 평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아니, 오히려 지금도 지나치게 높이 평가받는 것 아닌가. 짜집기한 레포트에 점수가 A+이 나온다면, 열심히 쓴 다른 학생들은 화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쓰다보니 그렇게 됐을 수 있다, 라는 논리로 공격당할 지도 모른다.

고로, 이거로는 모자란다.



2. 방법의 차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문열은 꿈이 지나치게 컸다. 그는 일을 완벽히 하려고 사족을 잔뜩 갖다붙였고, 그래서 글이 혼잡해져 버렸다. 정사 관련 자료를 근거해서 떠들어댄 것이 바로 그의 두번째 실수이다.

이문열이 번역한 것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인가, 진수의 '정사 삼국지'인가? 그는 엄연히 소설 '삼국지연의'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문열의 글은 두 글이 혼재되어 있다. 아무리 평역이라고 해도 그 틀을 날려버리면 곤란하지 않은가? 더더구나 그의 해석을 잘 보면, 조조의 악한 행위마저 약간씩 미화시키는 구석이 나타난다. 이쯤 되면 글을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난감해진다.

반면 고우영의 삼국지는 오로지 연의만을 근거한다. 정사가 어쩌고... 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연의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다 보니 나올 수 있는 결론들일 뿐이다.

조조가 싸나이다운 부분은 연의에도 있으며, 제갈량과 관우의 대립론은 박망파시 기존 세력과 제갈량 사이의 대립구도, 그리고 화용도 사건과 이후 제갈량이 관우를 다루는 부분 등에서 유추될 수 있는 부분이다(참고로 박망에서 제갈량이 활약하는 것과 화용 사건은 연의의 창작이다). 관우는 기존 유비 군의 대표격이고 제갈량은 당시 신진 세력의 대표이니, 이 충돌은 당연한 것이다. 유비의 후흑론 또한 유추 가능한 것이다.

원작을 근거로 새롭게 창작한 것이냐, 엉뚱한 글까지 끌고들어와 새롭게 창작한 것이냐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후자는 이미 번역이 하는 창조의 차원을 넘어서버린다.



3. 수단의 차이

이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우영은 만화가고, 이문열은 소설가니까. 그러나 생각 외로 이것에 의한 차이는 매우 크다. 만화가가 만화 중간에 껴드는 것은 방법에 따라 티를 안 낼 수 있지만, 소설가가 소설 중간에 껴드는 것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우영 씨의 해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보다는 분명 거부감이 적으며, 그것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일도 없다. 더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만화와 소설을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문제다. 만화는 웃어넘기는 대상이고 소설은 텍스트기에 신뢰해버리는, 이런 괴이한 고정관념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는 경우가 드물다. 보통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것은 부모님을 통해서이고, 만화책이라는 요소 때문에 삼국지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 갑자기 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이라도 해서 어느 정도 겪어본 사람들이 읽는 것이 고우영 삼국지다. 반면 이문열 삼국지는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접하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저렇게 팔려댔으니, 오로지 그것밖에 삼국지를 접하지 못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첫 작품의 영향은 중요하고, 더더구나 텍스트에 대한 신뢰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이것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고우영의 해석은 참신하다 감탄하며 웃고 넘어가든가 반박할 여지가 있지만, 이문열의 해석은 그것을 진실처럼 믿어버리는 사태가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둘의 해석 중 하나를 무턱대고 따르는 것은, 삼국지연의의 사고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를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요약하자면, 이문열이 그런 교조가 되버릴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다.



4. 사상의 차이

고우영 삼국지에서 높게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조조다 분명. 하지만 주인공은 누구일까? 조조? 아니면 유비나 제갈량? 아니. 예전에 딴지일보를 보며 절실히 공감했던 것인데, 고우영 삼국지의 주인공은 내 생각에 장비이다. 이 작품에서는 장비를 천박한 인물,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를 서민적인 인물의 극치로 묘사해내고 있다. 또한 사회 비판의 중심에 그가 있다. 고우영 삼국지는 지배층의 부조리, 현 시대의 비리와 세태를 비판하며, 서민지향적 구도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조조가 높게 평가를 받는 것은 그가 마키아벨리즘이라든가 지배자였다든가 하는 것 이전에, 그가 백성들을 편안케 하려고 했으며 신하들을 수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유비를 쪼다라고 평하는 것은, 그의 모습에서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문열 삼국지는 다르다. 이문열 삼국지는 서민이 아니라 지배층, 귀족지향적 구도를 지향한다. 이문열 자신의 성향이 반영된 것일까? 조조의 위대함은 그 카리스마와 강대한 권력에 있으며, 유비가 쪼다인 것은 권력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하고 방황하기에 그렇다. 그의 조조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같은 인물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중시되는 건 서민이 아니라 권력이기에, 그의 소설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상의 이유로, 고우영 삼국지와 이문열 삼국지의 평가는 극을 달릴 수밖에 없다. 삼국지라면 어느 정도 도가 텄다고 생각하는 나 또한 그 극을 달리는 사람 중 한 명에 속해있는 것도 저러한 까닭이니까.





소노투아 디스포지오네.

- 갈매기 라시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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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시엘 | 2004/07/27 01:49 | Sp. in Cultur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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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절초 at 2007/05/26 10:11
그래도 이문열 삼국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멋진 글빨때문이겠죠. 전 아직도 '한 창에 찍혀 죽은' 같은 묘사라거나 장비의 '이 속 컴컴한 놈아!' 같은 이문열 삼국지의 글들을 사랑해요.
Commented by 라시엘 at 2007/05/26 13:53
뭐, 삼국지란. ㅋ
Commented by 묵향 at 2009/06/24 00:16
삼국지라고는 만화책, 황석영님, 이문열님 삼국지밖에 안봤는데.. 고우영님 삼국지도 봐야겠네요^^ 제가 나이가 어리다보니 ㅎㅎ 글잘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라시엘 at 2009/06/28 14:00
옙. 자주 들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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