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1. 이래저래 복잡한 심경이 교차할 만도 한데 그래도 나름 평안한 상태. 살은 좀 빠지긴 했지만 건강 상태는 아직 이상 무. 시험 기간 거의 폭주하고 이틀간 내리 잠만 잤더니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은 하다.


2. 희한한 꿈을 꿨다. 간단히 말하자면, 히어로물 꿈이랄까. 내가 히어로가 된 적은 한번도 없는데, 두번이나 연속해서 히어로와 관련된 꿈을 꿨다. 한번은 히어로들의 명단을 받아보고 분석하고 있는 꿈이었고(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화려한 멤버 속에 껴 있던 짜파게티맨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오늘 꾼 꿈은 미드 히어로즈에서 나왔던 애들 몇몇이 등장했던 꿈.

근데 순간 깼다가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다시 잤는데 정말 이어서 계속 꿨다. ...깬 게 아니었던 걸까. 저런 게 정말 가능하냐는.

무엇보다, 꿈 속에서 히어로즈의 악당 사일러가 시간을 돌렸다고 진짜 똑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알고 있는 희한한 상태가 되었다는 거지만. 난 특별한 초능력도 없이 사일러랑 싸우고 있었고, 사일러는 왜인지 모르지만 금발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히어로즈를 안 보기 시작한 건 3기 때부터였다는 거. 왜 1년 가까이 안 본 작품이 떠오르는 거지. 짜파게티 안 먹은 지도 근 1년은 되가는 거 같은데.


3. 요새 알바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만든다. 참 별의별 알바를 다 하는구나 하는 생각 중.

호프집 2년
학원 1년 5개월
과외 7개월 1번, 5개월 1번, 3개월 1번, 2개월 1번
보드카페 4개월
잡역일(노가다) 1개월 * 2회
고객센터 전화 받는 일 2개월
교정 건 단위 3권
편집 건 단위 2권
선생님 일 도와드린 거

이젠 교과서 제작이다. 대체 뭐가 될라고 참. ㅋㅋㅋ


4. 알바하는데 옆 자리의 대리님께서 뉴스를 보고 계시는 걸 들었다. SBS 뉴스였는데,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이랄까 뭐 그런 내용. 그 기념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묘를 찾아가봤다는 내용이었는데, 순간 짜증 한번 팍.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지 못하는 우리인데, 이토 히로부미는 그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듯 싶습니다"

였나. 뭐 대충 그런 내용. 물론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불만이 있지도 않고 매우 존경하는 분이라는 것은 사실. 기자가 분통을 터뜨리는 내용이 어떤 건지도 대충 알겠고 이해도 하겠지만. 하지만 왜 다른 문제를 같은 것처럼 취급하는 건지, 상대편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자기 관점에서만 보는 그 관점에는 질려버렸다.

이토 히로부미를 단순히 조선 침략을 주도한 사람으로 보는 건 한국에서의 관점이다. 일본에서 그의 위치는 근대 일본을 이끈 사람이고 그 당시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일본을 사실상 만든 사람이었다. 그냥 단순히 따져도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이탈리아의 카부르에 비견될 인물이고, 일본의 헌법을 만든 사람이니 미국 3대 대통령 제퍼슨에도 비교할 만하다. 외교적 승리로 말하면 그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드물다. 물론 수 차례의 정치적 실패를 겪었던 인물이고 수많은 실수를 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런 것. 적어도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일본인들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을 받을 필요성이 충분한 인물이다.

한국인이 그렇게 경배를 했다면 그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러는 것에 대해 왜 반감을 가지지? 그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비하하기 위해 이토를 경배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일본 쪽에서도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하는 듯 싶은데. 이토에 대해 일본이 경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에 대해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이다. 순간적인 분노였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를 곡해하고 상대를 비하하는 행위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니던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건 좋다. 나 또한 세계사를 공부하지만 민족에 우선시되고 한국이란 이름을 사랑하는 한국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객관적 사실 하에 서야 하는 것이며, 남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형태로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민족주의가, 대체 나치즘과 다를 게 뭐가 있는지. 힘이 없어서 나치즘으로 가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게 아닐는지.


5. MB 정권에 대해 이것저것 보면서 생각하는 건데, 이거 진짜 FDR의 뉴딜정책 열화 버전이다. 4대강 살리기 정책은 테네시 계곡 개발 공사나 다를 게 없고,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는 노변담화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이랄까. 하지만 문제는, FDR의 정책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던 정책에 가깝다는 게 일반적인 지론이고, 게다가 이 경우에는 그 실패한 정책의 열화 버전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영상이 판을 치는 세태에서 라디오라는 발상도 웃기지만, 왜 노변담화라는 방법을 썼는지에 대해 알고는 있는지.

중요한 건 신뢰의 문제다.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책은 그 정책의 가부, 호오를 떠나서 일단 비난받을 수밖에 없고 진행되기 어렵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감정의 문제다. 이미 밉보인 입장에선 뭘 해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이라 해도 맘에 안 드는 사람 말이면 고깝게 보이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다. 신뢰 자체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노변담화는 거기에서 출발했다.

난 그렇게 진보적인 사람도 못 되고, 성향으로 따지면 골수 마키아벨리주의자에 가깝다. 정치가 중 최고로 꼽는 인물이 비스마르크, 카부르, 그리고 디즈레일리이다. 비스마르크의 급진적인 국가 주도, 카부르의 외교적 수완 등에 대해 나는 존경에 존경을 마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자체가 좋든 나쁘든, 적어도 그러한 부분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정치가는 우선 디즈레일리가 되어야 한다. 궁정인이 되어야 한다. 정말 옳은가, 정말 그 정책이 맞는가의 문제 이전에, 적어도 그것이 옳아 보이고 맞아 보여야 한다. 특히나 비스마르크, 카부르처럼 왕권이란 기댈 구멍이 있는 상태도 아닌 지금 현 상태에서, 왕은 우선 국민이다. 적어도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정말 거기에 휘둘리면 배는 산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야 한다.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인도 황제라는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줬다. 왜 MB 정부는 하려는 건 디즈레일리인 주제에 글래드스턴처럼 굴고 있는 거지? 글래드스턴이나 되면 다행이지. 그에겐 윤리라는 기댈 가치가 있었으니까.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계속 그렇게 밀어붙이면 반발만 살 뿐이고, 결국 이도저도 안 될 거라는 걸 모르는 걸까?

난 MB 정권이, 그리고 한국의 정치가들에 대해 분통이 터진다.
그들이 정치를 못해서이기 이전에, 너무 답답해서다.
그들이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아서다.

부정부패, 있을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가라면 아닌 척할 수 있는 구멍은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뱃속에 능구렁이 100마리 정도는 꿈틀대줘야 진짜 정치가지, 뭘 집어먹어도 바로 보이게 집어먹는 저 바보들은 뭐냐고. 적어도 당신들, 직업이 정치인 아냐? 역사 공부 좀 하면서 정체성을 좀 찾아봐라, 좀.


6. 근데 문제는, 저런 한국 정치인들을 그냥 뽑아주는 한국의 현 실태. 그리고 거기에 대해 대항할 만한 자신들만의 기조, 자신들만의 소신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비난만 하는, 대항마 하나 없는 야당의 모습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치가라기보단 서로 비난하기만 바쁘니 국민들은 정치에 질려서 관심만 점점 없어지고.

...나름 고단수인 건가. 정치에 관심 없는 왕,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만큼 편한 상대도 없긴 없겠지. 쳇.

여하튼 이 꼴대로라면, 다음 대선이라고 별로 달라질 거 같진 않다. 하아.






Por el monte profugo.

Rasiel, the pathfinder of wisdom.
by 라시엘 | 2009/10/27 00:21 | Sp. in Lif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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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uriel at 2009/10/28 22:46
디즈레일리까진 좋았는데 궁정인을 보는 순간 급 뿜었다. 이 마키아벨리스트, 어쩔 수가 없어!!!ㅋㅋㅋㅋㅋㅋㅋ 뭐,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디즈레일리 잘났다고 영국애들이 말하는 거에 인도사람들이 화내는 것 같은 거랑 동일한 맥락이라 생각하면 갑자기 현실이 다가오지요. 근데 오빠, 솔직히 우리나라 언론에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돼. 걔들은 BBC가 아냐-_-
Commented by 라시엘 at 2009/11/07 23:01
BBC가 되길 바라는 맘이라도 있어야 근처라도 가지 ㅋㅋ 과녁 자체가 별게 없으면 근처 맞는 수준으론 더 별게 없잖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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