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글이군요. 아직 바쁜 게 그다지 풀리지 않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취직한지 1달 정도 되니 조금씩 감을 잡아가는 듯해서 다시 글쟁이 모드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입니다. 근데 이거, 글을 한동안 너무 안 쓰다 보니 감을 좀 많이 잃은 거 같아요. 뭔가 감을 찾기 위해 끄적끄적대봐야지 조금씩 돌아올 거 같아서, 일단은 삼국지 쪽은 한동안 잠수 유지하면서 예전 쓰려고 쌓아뒀던 글들을 하나씩 풀려고 합니다. 감 잡으면 그때부터 다시 모드 들어가야죠. ㅎㅎ
흠. 그래도 가장 가볍게 쓸 수 있는 건 역시 야구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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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변만 유달리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는데, 직장 들어가니 이건 뭐 업무 이야기 빼고 대화하는 내용이 야구 이야기가 5할 이상. 아무래도 극도로 정적인 일 중 하나인 데다가 여성분들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다 보니 이런 분위기일 거란 생각은 안 했는데, 참 의외였습니다. 요새 분위기의 반영인지 아니면 여기만 유독 그런지 여성분들조차 야구팬이 꽤 많고, 그것도 꽤 열혈팬들이 많으셔서 기분이 묘하달까요.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두명 정도 말고는 여성분들 중 야구팬은 못 본 거 같은데 말이죠. 흐흠.
근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야구라는 스포츠는 좀 특이합니다. 박진감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어울리는 편은 아닙니다. 같은 구기 종목의 대표격인 농구나 축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정적이고 조용하며, 난타전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정말 지루한 경기도 분명 있습니다. 룰도 정말 복잡합니다. 복잡하게 들어가면야 축구, 농구도 여러 가지 룰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골이라는 게 뭔지만 알면 보는 데 지장은 없죠. 하지만 야구는 다릅니다. 그 복잡한 룰의 상당 부분은 알고 있어야지 제대로 볼 수 있고, 경기의 흐름이 보입니다. 축구나 농구는 솔직히 공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만 봐도 되는데 말이죠.
참 희한한 스포츠입니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두뇌 스포츠 계열 취급받는 스포츠가 아님에도, 지나칠 정도로 정적이고 룰도 복잡합니다. 이런 게임, 보통은 인기 없는 게 정상입니다. 예전 보드 카페에서 일할 때도 느낀 거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룰이 별로 복잡하지 않고 쉽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동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게임들이었습니다. 젠가, 할리갈리, 로보 77 같은 게임들이 그렇습니다. 카드 망가지는 속도만 봐도 인기가 좋다는 게 보일 정도에요. 하지만 야구는 그런 맥락에서 분명 벗어나 있음에도, 현재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 스포츠 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더 간단하고 대중적일 듯한 축구는 국대 경기 정도만 주목받고 있는데 말이죠.
저 또한 어린 시절 그렇게 느꼈고, 가끔 아버지와 함께 TV로 야구를 볼 때도 끝까지 참고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한 4-5회쯤 되면 이미 쿨쿨. 아버지께서 충청도 분이셨기에 나는 빙그레, 한화 팬이다 라고 일종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기는 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경기를 많이 보진 않았어요. 야구장 간 경험도 거의 없었고요. 워낙 본성이 지식 오타쿠다 보니 룰은 에진작에 다 알고 있었음에도, 야구의 재미 자체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보는 쪽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린 시절 쓰던 배트 하나, 야구공 하나, 글러브 하나조차 저희 집에는 없어요. 그 정도로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죠. 그러던 제가, 지금은 제 인생에서 야구를 빼면 반쪽을 떼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는 게 말입니다.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요.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1. 소년, 한 찌질이를 기억하다 - 쌍방울 레이더스
80년대의 야구는 솔직히 거의 기억에 없습니다. 그때의 기억들은 오직 책과 옛 신문들을 찾아보면서 새롭게 쌓아진 기억들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너무 어렸고(84년생),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야구를 괌심 있게 보셨던 분들은 아니었으니까요. 90년대 초도 기억이 별로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빙그레가 항상 올라갈 듯하다가 그놈의 해태만 만나면 지는 통에 우승 못한 기억.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니 92년까지 4차레의 한국시리즈 중 3차례를 해태에게 내줬으니 참 그러기도 어렵겠다 싶습니다. 제 90년대 초 야구에 대한 기억은 그 정도가 전부입니다. ...솔직히 만약 그때 한번이라도 우승했다면 야구에 관심을 갖는 시간이 조금은 일러졌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한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쌍방울 레이더스"입니다.
솔직히 어린 시절, 저는 6개 팀이 누가누가 가을야구하나 시합하고, 7위는 태평양, 8위는 쌍방울이 그냥 하는 게 야구인 줄 알았어요. 어린 나이에 가타부타 사정 다 알고 있을 리도 없었고, 경기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보지도 않았으니 그저 순위표만 기억날 뿐이었으니까요. 통산 기록을 실제로 보면 순위가 좀 더 다채롭습니다. 쌍방울이 실제로 꼴찌한 적도 3번뿐이었고, 태평양이 7위한 것도 2번뿐이었으며 그나마 그게 겹치지도 않습니다. 95년 딱 한번 그렇게 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항상 그 두 팀이 바닥을 달렸다 정도가 다입니다. 94년 태평양의 돌풍이 있었지만, 그때야 야구보다는 피구왕 통키와 축구왕 슛돌이에 열광 중이었으니 그건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냥 어린 시절의 삭제되고 왜곡된 기억 속의 꼴찌들, 그것이 바로 쌍방울과 태평양이었습니다. 4강 싸움하는 팀은 항상 엘지, 빙그레, 삼성,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해태였고요. 그게 90년대 초 야구에 대한 기억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1996년, 전 우연히 TV를 돌리다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 얘가 여기 있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저의 두뇌로는, 이 상황은 이해가 가는 상황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원래 꼴찌인 애들은 그냥 꼴찌인 거고, 상위권인 애들은 항상 상위권인 게 정상이었습니다. 근데 대체 왜 얘가 여기 있는 걸까. 어린 저는 이해가 안 되네, 하면서 일단은 계속 신문을 볼 때마다 야구 순위를 찾아보고는 했습니다. 결국 그 해, 쌍방울 레이더스는 2위라는, 제 두뇌와 사고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순위를 찍고야 맙니다. 그리고 다음해, 쌍방울은 여전히 선전하였고, 1997년 그때 저는 처음으로 쌍방울의 경기를 하나둘 보기 시작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그때 저의 기억은, 이 팀 참 이상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하냐고요? ...정말 찌질해보였거든요, 솔직히.
확실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아마 처음 봤던 경기는 쌍방울 대 엘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엘지는 참 멋졌습니다. 줄무늬 유니폼에 선수들 또한 패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잘 생긴 선수들도 참 많았어요. 뭐, 지금도 그런 것들은 가지고 가는 듯하지만(성적도 그때처럼 나오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쌍방울 선수들은..... 음. 솔직히 찌질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 됩니다. 그때는 아마 엘지 홈경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선수들이 작업복을 입고 있더라구요, 무슨(그 당시 쌍방울 원정 유니폼은 회색이었죠).
옷 색깔이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얼굴도 참 힘들어보였습니다. 잘 생긴 것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만, 선수들이 웃는 모습이 기억이 안 나요. 어디 아픈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들. 대부분 깡마른 체구들까지 겹치면서,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을 리 없을 듯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다 그 엄청난 훈련량과 그 속에서 길러진 지독한 승부근성 때문이었겠구나 싶습니다만, 어린 저에게는 그냥 이상한 팀이었습니다. 왜 그런 팀이 저렇게 잘 나가는지 신기한 팀이었구요.
하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더 기억이 남았고, 어쩌면 전 그 속에서 저 자신을 봤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물론 제 블로그를 읽어보신 분들은 대충 다들 아시겠지만, 전 그렇게 잘난 학창생활을 보낸 편이 아닙니다. 집안 형편은 심각할 정도로 좋지 않았고, 머리는 그래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사교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왕따라고 할 정도로 괴롭힘당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만, 최소 은따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 친구도 한두명 정도였고, 항상 외곽에서 맴도는 게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쓸데없이 심각하고 속에 쌓인 게 너무 많아 사소한 일에 폭발하던, 반항기는 충만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로 찌질한 그런 아이였습니다. 요새도 가끔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졸업 엘범들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이게 저였구나 싶구요. 누가 봐도 찌질했고 절대 웃는 일이 없었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란 팀은 바로 그런 저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의 쌍방울은 참 슬픈 팀이었습니다. 비록 빙그레 때보단 지원을 많이 받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빙그레 때는 한국 야구의 수준이 그렇게 올라오기 전의 상황이었고, 이미 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된 상태에서 말 그대로 각 팀의 쩌리들과 신인들만 모아놓은, 게다가 모기업도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은 가난한 팀이었고 심지어 연고지 팜도 팬층도 그리 두터울 수 없는 팀이었습니다. 정말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는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팀이었기에 그 팀은 당시의 저와 너무도 닮아있던 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소위 개막장 팀은, 단 한명의 존재로 갑자기 급변합니다. 바로 김성근 감독님입니다.
사실 김성근 감독님의 돌풍 신화는 쌍방울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89년 만년 꼴찌 태평양의 돌풍이 바로 그 시작이었죠. 하지만 그 시절에는 너무 어렸던 만큼, 저로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쌍방울 때의 기적은, 아직도 제 기억에 희한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말 아직도 신기합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그런 팀이 96년 2위, 97년 3위를 기록하며 강팀으로 변모하던 그 시절. 저는 그렇게도 첫인상이 나빴던 그 팀이 애달프면서도 그 팀의 선전을 기원했습니다.
경기를 그렇게 즐겨보지는 않았어요. 처음 인상만큼이나 쌍방울의 플레이는 항상 애달팠고 불편했고 왠지 모르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팀의 선전은 그런 미묘한 기분과 함께, 한편으로는 난 찌질하다,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을 수도 없이 생각했던 당시의 제게 왠지 모를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정말 악바리라는 표현이 그보다 맞는 팀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돌격대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팀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조규제와 김원형, 김기태와 심성보 같이 몇몇 선수들은 주목받을 만한 근거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뿐이었고, 그 외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소위 루저라고 할 정도로 비참했던 팀이 바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팀들을 꺾고 올라가는 모습은, 제게 묘한 희열이었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하나의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97년, IMF 사태와 함께 쌍방울은 모기업의 몰락을 맞고, 98년의 엄청난 추락에 이어 결국 해체의 길을 걸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쌍방울이란 팀이 만약 그때 그렇게 사라져버리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좀 더 일찍 옛날의 그런 모습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97년, 하지만 희망을 이루기도 전에 그 직후 바로 무너져버린 추억의 팀. 제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 중 하나는 중학교 3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습니다.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쌍방울이 여전히 그런 희망을 보여줬떠라면, 그때 그런 시도를 하지 않고서도 힘을 얻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저는 분명 여전히 한화팬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고, 그 시절 또한 여전히 빙그레, 한화의 팬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꼴찌의 반란, 찌질이의 성공신화를 보여주려다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진 쌍방울 레이더스의 기억.
그 기억이 아리고 슬프면서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저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유민 중 하나입니다.
2. 내 영혼의 멘토 - 야신 김성근 감독님
97, 98년의 화려하고도 슬픈 기억. 하지만 저는 그때 돌풍의 주역 김성근 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쌍방울 때의 감독님의 전략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힙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그 독해보이던 선수들이 오히려 편안해보일 정도로 항상 독하고 무서워 보이는 이미지, 그 정도의 기억이 다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어느 한켠 숨어 있는 틈에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학창시절이 끝나갈 무렵 하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키는 야구’ 구단서 불만. LG, 김성근 감독 해임"
아마 제가 본 기사가 이 기사는 아니었을 거 같긴 한데(이것도 벌써 10년 전이니;) 그래도 기억 속의 기사와 가장 비슷한 제목인 듯합니다. 흠. 약간 경우가 좀 특이합니다. 야구를 보고 이 사실을 안 게 아니라 이 사실을 알고 야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달까요. 당시 고3이었던 데다가 월드컵 인기가 한창이었던 때라 야구는 거의 신경도 안 쓰고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기사에 익숙한 세 글자의 이름, 그 이름이 제 기억에 오롯이 새겨져서 다시금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처음 본 게 해임 기사이니 경기를 볼 리가 있나요. 운 좋게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를 나중에 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잠깐의 순간일 뿐이었고 야구에 집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역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2007년 말, 다시 또 그 이름 석자가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것도 이번엔 우승이라는 이름과 함께.
80년대 해태와 90년대 엘지가 이끌었던 야구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00년대 후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야구의 대유행의 원인으로 2006 WBC 준우승과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꼽습니다. 저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경기가 벌어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이 현재의 야구 열풍의 가장 큰 시발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라는 개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제가 야구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바로 2007 SK, 아니 정확히는 김성근 감독님의 우승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그 이전의 SK에 대한 기억은 거의 전무합니다. 오로지 하나 기억하는 것은, 창단 당시 와이번스라는 이름이 참 맘에 안 들었었다는 것 하나뿐이랄까요. 비룡이라고 하면 그럴 듯하지만 실제 판타지나 신화 속에서의 이미지에서 와이번은 일종의 하급 괴수에 불과하거든요. 용이라지만 드래곤과 비교하면 지능도 낮고. 왜 저런 캐릭터를 하필 마스코트로 골랐을까 하는 기분. 쌍방울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그 선수들이 SK로 갔기에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 그리고 단지 그 기억만으로 끝이었습니다. ...하나 더 있군요. 왜 애들이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나 했던 거. 썩 좋은 기억은 없군요. 허허.
여하튼 드디어 2008년. 드디어 저는 SK 와이번스의 야구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바닥에 있던 팀들이 하나 같이 올라올 수 있었을까. 이제는 돌풍을 넘어 신화를 써가기 시작한 그 팀의 모습, 그리고 그 팀을 이끌고 있는 노장 김성근 감독님의 모습이 대체 어떤 것일까가 궁금해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제가 기억하고 있던 야구와는 다른 모습들, 야구가 정말 왜 재미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를 스몰볼이라고 부릅니다. 1루에만 나갔다 하면 번트를 대고, 투수가 조금 흔들리기만 하면 투수를 교체하는 그 모습에 스몰볼이라고, 일본식 야구라고 욕합니다. 감독만 주목받고 정작 선수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야구라고 욕하고, 선수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고 기계로 만든다고 욕합니다.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더러운 야구라고 욕합니다. 분명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논리 또한 어느 정도의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 그래서이기 이전에 그러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것을 왜곡해서 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09년 SK의 스몰볼을 하는 야구는 정근우를 제외한 선발 전원 2자리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2000년 삼성과 현대, 2002년 삼성과 한화, 역대 프로야구를 통틀어 이렇게 총 4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을 SK가 달성했습니다. 확실한 거포라고 할 선수는 없지만 대신 모든 선수가 한방이 있는 팀. 투수 교체가 잦다고 하지만 정작 2008-2010년까지의 선발들의 최종 이닝수를 보면 타팀과 비교해서 결코 적지 않습니다. 퀵후크 등이 분명 많지만 그것은 기필코 이기겠다는 의지와 그 관련해서 스윙맨을 잘 육성시킨 것에 따른 결과 쪽에 가깝습니다.
이슈화된 빈볼이나 비매너 사태들은 많지만 정작 사사구 갯수는 하위권이며, 유달리 SK와 관련된 기사들이 대거 양산되서 그렇지,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은 타 팀에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강팀이고 우승팀이니까요. 지난번 넥센 김상수 선수가 기아 김상현 선수를 맞춘 사건은 예전 SK 채병용 선수가 롯데 조성환 선수를 맞춘 것과 거의 모든 부분에서 상황적으로 유사합니다. 나중에 사과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정황도 유사하고 그 당시의 태도는 오히려 김상수 선수가 좀 더 건방져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영남권에서 가장 열광한다는 롯데나 호남권에서 가장 열광한다는 기아나 인기팀이라는 것까지 마찬가지고, 주축 선수라는 점까지도 동일합니다.
하지만 채병용 사건만큼 김상수 사건을 기억하는 분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야구 뉴스는 전팀 모두 챙겨보는 편이지만, 김상수 사건은 그렇게 기사도 올라오지 않더군요. 저조차 당시 경기를 안 본 상태였기 때문에 최훈 카툰을 보고서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넥센에 대해 관심 있는 분이 적기 때문이며, 넥센 마켓이라고 불릴 정도의 모습이 강조되다 보니 그냥 불쌍하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SK가 더러운 야구를 한다? 그런 소리 안 듣는 건 간단합니다. 성적이 나쁘면 됩니다. 약자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거니 할 뿐이죠.
물론 좀 심하다 싶은 상황도 충분히 있습니다. 솔직히 감독님께서 항의하시거나 할 때 과민하거나 지나쳐보이는 모습도 없지 않습니다. 아예 심판 앞에서 드러누우시거나 순전히 상대를 흔들기 위해 항의하실 때도 있습니다. 박현준 선수의 로진가루 문제나 몇몇 선수들에 대한 보크 논란 같은 것도 솔직히 그건 심했다 싶었고, 감독님, 제발 자제염... 하고 생각한 적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의 감독들 중 유일하게 남으신 분이고, 그렇기에 객관적인 눈이 아닌 주관적인 눈에서는 약간 민망하긴 해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보니 논지가 좀 흐트러졌습니다만, 인간이란 그것이 누구이든 단점도 분명히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만큼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아니, 단점이 아무리 많은 사람조차도 장점이 있다면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님이 야구라는 자신의 분야에서 보여주시는 모습들과 그 분의 수많은 말들은, 언제나 제게 감동과 눈물과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분이 보여주시는 치열한 삶의 태도, 오직 야구 하나에만 열과 성을 다하는 장인의 자세. 그 수많은 내용들은 수천 권의 책이나 기타 수많은 선현들의 가르침들보다도 생생하고 가슴 깊이 들어오는 내용들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장인 스타일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를 파고들기보다는 수많은 분야들을 보고 연구하면서 그것들의 조합과 융합을 생각하는, 지금 저의 입장에서는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지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만능인을 지향하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한테도 그분의 말씀들은 주옥과 같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뿐은 아닐 것입니다. SK 선수들, 특히 김성근 감독님 전격 해임 이후 조동화 선수가 보여준 기습 끝내기 스퀴즈, 최정 선수가 스스로 자신의 타격폼을 점검하고 수정한 후 홈런을 때려냈던 모습들은 그 선수가 얼마나 그 가르침들 속에서 큰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을 기계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럴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시는 것이 감독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바로 지금의 강팀 SK가 있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불미스러운 논란 끝에 감독님은 다시 또 야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쉬지 않으시고 성균관대로 달려가 인스트럭터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제 한국 나이로 칠순, 만으로도 고희를 앞둔 연세이심에도 쉬지 않으시고, 야구를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아프면 할일이 없어진다. 내 인생의 전부인 야구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연세를 생각하면 과연 다시 프로야구 현장에 돌아오실지 장담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지금의 시점까지도, 그분은 진정 인생을 사는 방법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습니다만, 정경배 선수가 김성근 감독님이 한 말 중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는 다른 사람이 간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저 또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3. 야구는 전쟁이며 인생이다 - One Out by 카이타니 시노부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야구가 정직하지 않기에" 좋아합니다.
뭔가 참 이상한 말이죠. 저도 가끔 이상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습니다. 야구는 결코 정직하고 아름다운 스포츠가 아닙니다. 축구, 농구처럼 골을 넣으면 1점이라는 확실한 공식이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홈런을 쳐도 그것이 1점일 수도 있고 4점일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 중 유일하게 도둑질(도루)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투수는 어떻게든 속여야 하고 타자는 어떻게든 그 속임수를 간파해야 합니다. 심지어 포수들 중 강민호, 진갑용 같은 선수들은 타자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것이 팀에 득이 됩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고 뒤흔들고 부숴버려야 하는 스포츠, 그것이 야구입니다.
야구의 모든 룰이 그렇습니다. 주자는 루상에 나가서 투수가 투구에만 집중할 수 없도록 괴롭혀야 하고, 투수는 그 주자가 함부로 뛸 수 없도록 견제와 모션을 조율해야 합니다. 타자는 필요하면 커트를 해서라도 투수를 끊임없이 괴롭혀야 합니다. 팀배팅이라는 것조차 결국은 그러한 맥락입니다. 심지어 홈런조차 팀에 득이 아니고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 투수가 정신차릴 틈을 주지 않는 것 또한 야구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스포츠의 상식으로는 이해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소위 스포츠 정신이라고 하는 공정한 경쟁과 뭔가 동떨어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농구, 축구에서도 페이크 동작 등의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야구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 정도로 더럽고 추잡하고 흉악한 스포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요소 때문에 야구는 정적인 스포츠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축구, 농구 이상으로 동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스포츠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저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야구를 좋아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결코 정직하지 않습니다. 온갖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인생이 결코 정직하지 않기에, 우리는 또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목과는 달리, 야구 선수는 오직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만으로 승부가 나지 않습니다. 김선빈, 손시헌, 정근우, 이용규 같은 선수들은 결코 키가 큰 선수가 아니고 특히 김선빈 선수는 일반인 기준으로도 작은 편에 속하지만, 리그 최고의 선수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140후반에서 150대까지 던지는 강속구 투수들도 있지만, 120-130대의 투수들 또한 그 나름대로의 살아남는 방법이 있습니다. 리그 최고의 마무리 중 한명으로 꼽혔던 퀸비 정대현 선수의 구속은 최고구속조차 140을 거의 넘지 못합니다. 한국을 넘어 MLB 쪽까지 생각해보면, 너클볼러 웨이크필드의 구속은 110 전후에 지나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짧아서 일반적인 변화구를 던질 수 없었던 선동열은, 오히려 그 짧은 손가락 때문에 희한한 궤적의 슬라이더를 던지며 리그를 제패했습니다. 무엇보다, 누가 이대호 선수의 몸매를 보고 프로 선수로 생각하겠습니까. 씨름이나 스모는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야구는 정직하지 않으며, 따라서 오히려 다양성이 허용되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어떤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이 다가 아니고, 반대로 어떤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다른 능력으로 만회할 수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선수 기용이 대표적입니다. 조동화, 전병두, 고효준 등의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쓸 수 없다고 평가하던 선수들이었습니다. 조동화는 수비는 특출나지만 솔직히 타격은 완전 제로에 가깝고, 전병두나 고효준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팀의 중심선수로 자리잡은 지금까지도 제구는 안드로메다로 팔아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조차 야구에서는 허용됩니다. 배리 본즈나 산타나 같은 완벽한 선수가 아니더라도, 다 그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구이고, 그것이 인생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야구 만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카이타니 시노부의 작품, One Out입니다.
원아웃은 일반적인 스포츠 만화와 많이 다릅니다. 주인공은 강속구를 던지지도 않고 던질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기기묘묘한 변화구는 커녕 커브 하나도 던질 줄 모릅니다. 기껏해야 120초중반의 직구를 구사할 뿐입니다. 물론 공의 회전수를 조정할 수 있다는 설정이 있지만, 그 정도는 사실 MLB의 무빙볼 투수들이 그런 사례들이 있고 국내에서도 흑마구라고 불렸던 전병두나 장호연, 성준 등의 선수들이 여러 가지의 직구를 던졌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옵니다. 그러나 그런 주인공이 팀을 바꾸고 우승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그것이 전체 내용입니다.
저 말만 보면 뭔가 성장 스토리일 것 같은데 그조차도 아닙니다. 정작 내용은 그런 황당한 주인공이, 오직 승부사로서의 능력과 귀신 같은 심리 조작술을 통해 이겨나가고 그런 속에서 팀을 바꿔간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의 거의 모든 부분은 거짓이 판치는 야구의 세계, 그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인간들의 머리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구만화의 전설로 꼽히는 H2나 4번타자 왕종훈(원제 4p 다나카군) 등과는 다릅니다. 정직한 승부와 사나이의 우정, 뭐 이딴 거 갖다버렸습니다. 사나이의 우정은 좀 나온다고 쳐줄 순 있을라나? 하여튼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내용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과장된 요소 또한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저는 이런 스타일이 비록 극단화된 양태로서의 모습일지라도, 어쩌면 진정한 야구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심지어 만화에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뱉고 있습니다.
"야구는 축구와 같은 1점 넣고 넣는 정직한 게임과는 다르다."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죠. 축구나 농구는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는 중세 기사들의 백병전이라면, 야구는 속이고 속이는 전술가들의 두뇌전이라고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육체적인 능력은 하나의 무기일 뿐입니다. 이것은 서구에서의 전쟁 방식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쟁 방식이며, 기사도 문학에서의 숭고한 싸움이 아니라 삼국지 속의 기기묘묘한 전략의 대결입니다. 속고 속이고 그것을 간파해나가는 것,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는 것. 이것이 곧 원아웃의 야구이며 실제의 야구인 것입니다.
저 또한 그것을 봅니다. 홈런의 짜릿함도 강속구로 꽂아넣는 삼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재미있는 것은, 감독들의 수싸움과 선수들의 수싸움입니다. 포수의 리드, 투수의 견제, 기타 수많은 동작들 속에서 나타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승부.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원한 홈런도 좋지만 그보다 제게 더 짜릿한 것은 생각지도 않은 스퀴즈 번트이며, 기가 막힌 타이밍의 홈스틸입니다.
바둑이나 장기는 순전히 두뇌의 게임입니다. 오직 두뇌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지루할 수 있습니다. 축구나 농구 등의 구기 종목들이나 격투기는 육체적 능력의 경합입니다. 물론 그 속에서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가미되고 있지만, 그것은 쉽게 눈에 띄는 요소들이 아니며 잠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본이 되는 룰 속에서 그 모든 것이 제약받습니다. 박진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바싹바싹 조이는 맛, 상황을 예측하는 그런 맛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야구는 다릅니다. 극도로 정적인 요소와 극도로 동적인 요소가 환상적으로 융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야구에는 이야기가 있다 - 야구의 추억 by 김은식
사실 이 부분은 굳이 야구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축구든 농구든 다른 종목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에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네이트 카툰 중 오정현 씨의 "스타플레이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 내용은 야구가 아니라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플레이어들의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면서 즐겁고 한편으로는 짜릿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국 프로야구 속의 뒷이야기들 또한 짜릿함이 있습니다. 감동과 눈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 바로 김은식 씨의 수필집 "야구의 추억"입니다.
김은식 씨가 다루고 있는 내용 중 80-90년대 내용은 솔직히 어렴풋한 기억 이상은 없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훌륭한 문체 속에서 뽑아지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아리기도 하고 추억에 젖게도 합니다. 그것이 저의 추억 속의 이야기일 때도 그저 들어만 봤던 이야기일 때도, 심지어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그 모든 이야기들에 하나하나 취해가는 것이죠.
스타플레이어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매력적인 것은 그 아래의 수많은 이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입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것은 가장 성공한 1인자의 영광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1인자의 이야기들도, 그들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통받았던 그 이야기들이 더욱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입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심도 있게, 그러면서도 잔잔한 느낌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저는 프로야구 팬 중에서 결코 올드팬이 아닙니다. 그 전까지의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지만 본격적으로 본 것은 한참 야구 뉴비들이 날뛰기 시작했다는 2008년부터입니다. 입장이 다르다고 우겨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고, 시간적인 요소에만 보면 객관적으로 봐도 엄연히 저는 뉴비 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합본 책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한권이 더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단순히 뉴비가 아니라 올드팬으로서의 감성을 느껴보았고, 그들의 추억을 같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비난은 잠시이나 기록은 영원하다."
김영덕 감독의 말입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구가 매력적인 스포츠인 한 이유는, 그 영원히 남는 기록들의 색채입니다. 그 기록들을 보며 우리는 놀라고 감탄하고 그 선수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말을 바꿉니다.
"기록도 영원하고 이야기도 영원하다. 하지만 기록은 머리에 남지만, 이야기는 가슴에 남는다."
기록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스토리입니다. 기록은 이성적으로 한 선수의 스탯을 보여주지만, 이야기는 그 선수에 대한 추억과 과거 그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의 기억을 되새기게 해줍니다. 스포츠가 단순히 기록을 만드는 것에 급급한 것이라면, 그것은 기계가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저기 두산에 기계가 하나 있지만 그건 별개로 치고. 하지만 스포츠는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 요소가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록들이 아니라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 고통과 환희의 이야기들이 팬들의 가슴 속에 남는 것이 바로 스포츠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이며, 문화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모두 스토리텔링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포츠 또한, 프로야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기만 하는 것이 야구가 아니라, 그들이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바로 야구의 진정한 매력일 것입니다. 제가 김성근 감독 휘하의 SK 야구에 열광했던 것은 끊임없는 그들의 고뇌와 악착같은 승부욕, 마치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가는 플레이를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진땀을 쥐게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버려진 선수들이 다시금 재기하고 자리를 찾아가는, 그들의 성공담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야구에 이야기가 없다면 그것은 잠시의 흥미일 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라는 형태로 힘을 가지고 있기에,
하지만 그것이 영혼을 울리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저는 야구를 사랑합니다.



5.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다 - 사랑하는 선수들
예전 야구라 씨 블로그에서 본 글입니다. 전설적인 투수 밥 깁슨.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일하는 사람들’(men at work)에서 밥 깁슨의 말을 빌려서 ‘야구란 실패의 스포츠’라고 정의했습니다. 은퇴하고 나서 오클라호마에서 목장을 경영하던 깁슨이 팁 오닐 하원의장의 초대로 오찬모임에 참석했을 때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합니다.
“야구란 실패의 스포츠다. 최고라는 타자도 대략 65%는 실패한다. 오늘 이 자리에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투수가 두 명(밥 깁슨 자신과 왼손 투수 최다승을 올린 워렌 스판) 있다. 어느 쪽이든 패전 수도 한 팀의 한 시즌 경기 수보다 더 많다.”
정말 그렇습니다. 야구는 실패의 스포츠입니다. 3할 5푼을 친다면 그 타자는 단연 리그 최고 타자일 것입니다. 30년간 역대 프로야구 수위타자 중 3할 5푼 이상을 친 사람은 10명입니다. 하지만 3할 5푼이라고 하면, 그것은 65%는 실패한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단일 리그에 한정된 것이며, 통산 타율 3할 5푼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3시즌을 뛴 백인천 전 감독이 335, 타격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장효조 전 감독이 331로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야구입니다.
축구나 농구 또한 실패가 있습니다. 농구는 상대적으로 골이 많이 터지는 게임이니 그런 요소가 조금 적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축구는 실패투성이 게임이다. 골을 만들어내려고 수많은 드리블과 패스를 시도하다 겨우 한두 골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다. 그 숱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따라서 축구는 실패를 컨트롤하는 경기다"라는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축구 또한 실패를 딛고 올라서는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야구는 여기서 한술 더 뜹니다. 축구는 실패를 거듭해가며 성공을 하는 스포츠라면, 야구는 실패를 밟고 성공을 이뤄내는 스포츠입니다. 야구는 팀 플레이지만, 그 본질은 동시에 1:1 플레이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직구든 변화구든, 그 사인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코너에 꽉 차게 제구된 공을 쳐서 담장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야구에서의 수많은 타자들의 기록은 바로 상대의 실패, 상대의 실수에서 나온 기록들입니다. 투수가 실투가 없다면 그 게임은 퍼펙트게임이 된다고 하죠.
이것이 야구의 특이한 점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실패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스포츠가 야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줄여나가는 것이 바로 승리의 길입니다. 니시오카 선수가 말했듯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미없게 한이닝을 막는 것"입니다. 김성근 감독님이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이기는 야구"가 아니라 "지지 않는 야구"를 추구한다고 말씀하시는 까닭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각 선수와 감독들은 그 실패, 그 실수를 줄여나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훈련합니다.
그 모습이 좋습니다. 야구가 성공의 스포츠가 아니라 실패의 스포츠이기에, 우리네 인생이 성공의 인생이 아니라 실패의 인생이기에, 그 수많은 실패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하는 그 모습이 좋습니다. 상대의 실패, 상대의 실수에 칼을 꽂고 상처를 벌리며 피를 빼는 모습은 잔인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최고의 힘을 보여주더라도 팀의 도움이 없다면 누구든 무너져내립니다. 8이닝 퍼펙트의 기록에서 순식간에 무너져내린 송골매 송진우 선수의 플레이, 10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음에도 점수를 내지 못한 팀의 한계로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던 열사 배영수 선수의 플레이. 야구는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것, 동시에 이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두 전제를 같이 보여줍니다. 어떻게든 상대를 짓밟으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하며, 그러면서도 팀 동료들의 도움 없이는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치열한 전쟁에 가깝습니다.
그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저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올드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듣고서 웃을 수밖에 없는 농담이 있습니다. 바로 성준 선수와 박한이 선수의 가상대결입니다. 유달리 느렸던 셋모션과 130대에 불과했던 속구 스피드, 그래서 유달리 인터벌이 길었던 성준 선수와 타석에서 준비 동작이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지금은 12초 룰 때문에 좀 짧아지긴 했지만, 박한이 선수. 그 두 선수의 가상 대결은 만약 제가 본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내용이면서도 읽는 순간에는 그렇게 웃길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왜 그리도 그들은 느리게 플레이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그 느린 플레이는 그 치열함의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성준 선수의 45분간 1이닝 무실점이라는 믿거나말거나 하는 기록에 어이가 없어 폭소를 터뜨리지만, 그 속에서 겪었을 끊임없는 고뇌의 시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맘속 한켠엔 아련함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야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준 선수에 대한 기억이 그 기나긴 시간의 치열함이라면, 송진우 선수에 대한 기억은 그 끊임없는 변화의 치열함입니다. 21년간의 프로 생활에서 672경기 210승 153패 103세이브, 3003이닝 2048 탈삼진. 이제는 잘 하는 선수라면 너나 할 것 없이 MLB, NPB로 진출하는 시대이기에 아마도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 화려한 기록들. 그러나 그 오랜 기간 그가 살아남았던 것은,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함께 변화의 추구였습니다. 본래 140대 후반을 찍던 강속구 투수였지만, 그 강속구를 잃은 이후에도 기교파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싸워온 노전사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한편 현역에서는 조동화 선수가 있습니다. 솔직한 생각을 말하자면, 조동화 선수는 프로의 그 많은 선수들 중 특출난 선수는 아닙니다. 수비는 정말 탁월하지만 그래서야 반쪽 선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반쪽 선수입니다. 타격은 2할 후반만 쳐도 커리어 하이인가를 의심할 정도이며, 1할대나 아니면 다행이겠거니 해야 할 판입니다. "가을동화"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포스트시즌에서 강한 임펙트를 자주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하지만 만약 김성근 감독님 휘하의 SK를 상징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그리고 현역 선수들 중 가장 치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선수를 꼽으라면, 저는 조동화 선수를 꼽을 것 같습니다.
선수들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들은 이대호, 류현진, 김광현 같은 화려한 선수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재능이 없더라도,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와 플레이로 자기만의 자리를 확보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조동화 선수가 바로 그런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비록 홈런이나 안타를 치지 못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번트, 도루, 멋진 호수비로 상대를 흔들고 공격의 맥을 끊는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 스타일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하는 선수가 바로 조동화입니다. 가끔 아군의 맥을 끊는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반쪽짜리로 평가받는 선수라도 적재적소에 기용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천재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기에 그 모습은 또한 아름답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박정태를 필두로 이정훈, 정근우, 오재원 등 유달리 2루에 많이 포진된 악바리들, 정우람, 정대현, 손승락, 오승환 등 차분한 표정으로 반드시 점수를 지켜내는 돌부처 불펜 투수들 등등. 그리고 박정진, 전병두, 고효준, 이번 시즌의 허웅 선수 등 전혀 보이지 않던 선수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그려내는 드라마들까지, 야구에는 그 치열함 속에 아름다운 드라마를 그려내는 선수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최근 최동원 전 감독님, 장효조 전 감독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영구 결번조차 되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받조 못했던 두 분이셨습니다. 이들의 뒷모습들을 보면서, 한화 팬이라는 게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 송지만 선수를 트레이드한 전력이 있고 이범호 선수를 놓치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구단 특성상 배신감을 느낄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거든요. 송진우 선수도 과거 삼성과의 트레이드설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고 영구 결번의 영광까지 무사히 남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여파로 팀 리빌딩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팬으로서는 그 기억이 단지 나쁘지만은 않은 부분입니다.
뭐, 어쩌면 한화라는 기업 특성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 김승연 회장이 사람을 폭행했다고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참 묘합니다. 분명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는 하지만, 요즘 세상에 기업 총수가 아들이 맞고 돌아왔다고 그걸 똑같이 패러가는 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죠.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오히려 암수를 써서 말살시키는 쪽이 더 정상적인 패턴일 것입니다. 드러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훨씬 적구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거지만 그에 대해 안 좋은 눈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건 제가 한화 팬이기 때문일까요. 일종의 조폭 문화라면 조폭 문화의 느낌도 있겠지만, 최영필, 이도형 선수 FA 건도 약간은 "이건 배신이야"하는 느낌이 강했죠, 정치적인 플레이들이 사방에서 설치는 현대 사회에서 팬들에게 "태균이 잡아올게"라고 말하는 소탈함이 왠지 맘에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6. 마지막 한방의 승부사 - 야왕 한대화
어쩌다 보니 마치 SK 골수팬인 것처럼 글을 썼습니다만, 어찌 됐건 전 엄연히 한화팬입니다.
그렇기에 최소한 마지막은, SK가 아닌 한화 이야기로 마무리지어볼까 합니다.
이미 공동 6위로 시즌은 종료되었지만, 2011년 한화의 모습은 정말 짜릿함의 극치였습니다. 2010년 무기력하기 그지없었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악착같이 매달리는 그 모습은 2007년 SK가 보여주었던 그 모습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선수진 수준은 타 팀에 비교하면 1.5군 수준, 준 신생팀 수준일 것입니다. 어쩌면 신생팀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경기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투수력이 완성되지 않아 질 때는 크게 지는 때가 많았지만, 타격이 여전히 부족한 면이 산더미같지만, 이번해 보여준 모습은 전문가들이 전부 꼴찌로 꼽던 그 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바로 야왕, 한대화 감독이 있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홍대화, 홍대화 하면서 욕하던 저였기에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만, 이번 해 한대화 감독이 보여준 모습은 충분히 명감독의 자질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참 희한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성근 감독님과 한대화 감독은 과거 감독과 선수 시절 상당한 악연의 사이였습니다. OB 시절 한대화 감독이 간염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김성근 감독님이 게으름 부리는 거라 생각해서 결국 해태로 트레이드되는 계기로 작용했기도 했고, 97년 쌍방울에서는 3루수로 뛰라는 김성근 감독님의 말에 지명타자가 이미 익숙해져서 불가능하다고 한대화 감독이 맞선 끝에 결국 은퇴 수순까지 가게 되었으니까요. 악연이라도 그런 악연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하는 건지, 그 두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왠지 모를 겹침이 보이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김성근 감독님 휘하의 쌍방울, LG, SK 등이 보여줬던 플레이는 한마디로 근성이었습니다. 타팀들이 하나같이 "지독하다"라고 평가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죠. 선수 모두가 예전 박정태, 이정훈 같은 악바리 선수들처럼 달려들었으니까요. 한화의 올해 플레이 또한 그랬습니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끝내기까지 이어지는 플레이, 그것이 이번 한화의 플레이였습니다. 투수 교체 타이밍이나 정확한 시점에서의 수비 포메이션 이동 등의 부분에서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스타일이 철저한 훈련을 통해 그런 선수들을 만들어나가는 것과도 분명 다릅니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서는 왠지 모를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은, 김성근 감독님이 승부사라고 불렸던 이상으로 한대화 감독이 해결사라고 불렸던 그 잔상일까요.
아직 2년차 감독이고 선수층 자체가 얇아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줬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올해의 선전만으로 평가하기도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지독한 근성, 그리고 그 속에서 그려지는 드라마가 있기에 야구가 매력적인 것, 현재의 한화가 매력적인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매력이 내년, 내후년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한대화 감독 또한 좀 더 성장하여 최고의 감독 중 한명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전에 야구는 참 미국적인 스포츠라고 평가하는 글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보는 한국 프로야구는, 단순히 미국적인 스포츠로서의 야구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는 동아시아의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에 비해 훨씬 더 큰 감독의 비중 때문일까요. 감독들의 고뇌 속에서는 서구에 비해 유달리 전략, 전술적 요소가 강조되었던 동아시아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듯합니다. 선수들의 싸움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영웅들이 일기토를 벌이고 백만대군을 휘저으며 말을 달렸던 그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2011 야구가 이제 가을야구 시즌으로 들어섰습니다. 사실 한화도 시즌을 마감했고 김성근 감독님도 떠나신 마당에 이번 가을 야구에 최근 3년 동안만큼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나마 직장 때문에 바빠서 잘 챙겨보지도 못할 것 같구요. 하지만 이번 가을에도, 그리고 내년, 내후년에도 한국 프로야구는 계속해서 숱한 이야기를 써내려갈 겁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그치지 않는 한,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일 것입니다.
소노 투아 디스포지오네.
라시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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